임백준님의 블로그에 좋은 글이 있어서 소개 합니다.(링크 - http://blog.daum.net/baekjun)



늘 웃는 얼굴이고 실력도 뛰어난 중국 프로그래머 한 명이 최근에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회사로 옮겨갔습니다. 맨하탄의 센트럴 파크 바로 아래에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MBS(Mortgate Backed Security)라는 금융 상품과 관련된 수식을 연구하고 그것을 소프트웨어로 작성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는 대학 시절에 물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좀 더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분야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면서, 현재 직장에서는 그런 일을 찾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설명이 저에게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보면 화면 한구석을 차지하는 컴포넌트의 색깔을 연두색으로 할지 노란색으로 할지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야 하는 것처럼 김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잠을 설쳐가면서 구현한 논리가 사용자가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하는 일도 있습니다.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정연한 논리와 창의력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말빨’이 뛰어난 사람이 프로젝트의 운명을 들었다 놓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프로그래머가 자기 일에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는 순간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하루에 열 두 번입니다.  


이 중국 친구는 저와 마찬가지로 영어가 제 1 언어가 아닙니다. 그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회의>에 더욱 진한 <회의>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제가 보기에 똑똑한 그 친구는 가끔 자신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자기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을 힘겨워 했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제안한 별로 아름답지 못한 알고리즘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밀어내는 일에 그는 고통을 느꼈을 겁니다. 스스로 그런 과정을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제가 그의 아픔을 모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일을 찾아서 떠난다는 그의 이야기가 사실은 멋진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좀 더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일이란 사실 조금이나마 덜 <회의>해도 좋은,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 탓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수학자나 경제학자가 작성한 수학 공식을 그대로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일처럼 따분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창조>의 희열을 맛보는 사람은 수학자나 경제학자이지 프로그래머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프로그래밍의 과정에서도 <사용자 요구사항>을 작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프로그래머가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용자 자신일 수도 있고, 사용자와 대면하는 분석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그래머는 결코 자기 자신을 주어진 <요구사항>을 <프로그램>으로 그대로 옮기는 단순한 존재로 낮추지 않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사용자와 분석가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뜨거운 사랑에 빠진 연인들조차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정작 연애가 아니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에 가는 일로 보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일은, 모든 창조적인 일은,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힘>을 토대로 합니다. 그리하여 <회의>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일상을 딛고 창조에 몰두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지, <일상> 자체가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대부분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중국 친구가 차라리, 하게 될 일은 지금 하는 일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데,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돈을 더 많이 주더라. 이렇게 솔직히 말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론적이고 수학적”이기로 따진다면 지금 하는 일도 별로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상에 <회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그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회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인가 아니면 일상 그 자체인가. 대부분의 경우 문제가 있는 것은 일상이 아니라 자기입니다. <일상의 힘>을 믿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 <창조>는 없습니다.